땅끝 - 로빈윈리암스 피터팬 되다

터들이

그는 늘 도망가고 싶어했다.
도망 갈 수 있는 곳까지 도망가고 싶어했다. 이제 그는 도망을 간다. 밤새 뒤척이다, 그 아늑한 아침 잠자리의 유혹을 물리치지 못해 오후까지 뒤척이다, 세수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챙기지 않고 무작정 거리를 나선다.

``광주 한 장 주세요.''
결혼식으로 분비는 거리를 지나, 모두들 무엇 때문에 거리에 나섰는지 모르겠지만 온통 차들로 가득한 거리를 지나, 이제 5분 남은 버스를 탄다. 그리고, 기사 아저씨는 광주행 차표에서 승차권과 영수증을 분리했고, - 영수증, 그래 확인은 필요한게야. 세상은 늘 그러해왔다. `내가 광주까지 간다.'는 기호에 대한 그 확인 말이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도 그 영수증이 있었으면 좋겠다. `니가 내게로 온다.', `내가 니게로 간다.'는 기호를 확인하는 그 영수증 말이다.

밤새 비가 내리더니 날이 너무 화창하다.
그는 다시 보아야하는 이 회색빛 하늘과 이 회색빛 도시를 어젯밤 빗물 자국이 아직 남아 있는 차창 너머로 본다.
단지 보이는 것은 보이는 것일 뿐일진데.....
왜 그것을 보고 `존재한다'라는 그 무서운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시간이라는 그 공간 속에 우리는 살고 있기 때문에? 아인슈타인 아저씨의 말처럼 빛과 같은 속도로 움직인다면 우리는 그 시간이라는 것에 대해서 생각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어쩌면 그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한                   짙
    어떻습니까?              탈렌트                 은
       오늘                 아저씨의               녹색
     그린소주       술        잔을                 병과
       한잔        들고      방그레                그알
                 웃고있는 모습과 오른쪽으로        콜의
                 보여지는 지극히 상투적인          유혹

신호등 때문에 잠시 차는 멈추고 기사 아저씨가 틀어놓은 라디오로 `방위 남편이 첫월급을 타서 바나나를 사왔고, 아내는 `좋아하지도 않는 바나나를 왜 사왔냐'고 묻고 남편은 `첫 월급으로 부피 많은 것을 사주고 싶었는데 이것밖에 없었다'고, 그리고, 아내는 결국 그달 월급을 구경도 못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서대구 터미날(?)에 잠시 멈추었고 버스는 꾸역꾸역 광주로 가는 사람들을 삼킨다.

그 집어 삼킨 사람들 중에는 그의 옆에 앉은 한 처자도 포함이 되었다. 그녀는 예뻤다. 그래서 더 슬펐다. 어쩌면, 그녀도 예쁘고 있을게다. 11월의 신부 - 흐린 초겨울, 칙칙한 늦가을. 버스 히타로 답답한 멈추어있는 시간.

그는 주말 꽉 막혀있는 도로 사이에서 담배를 피고 싶어한다. 낯익은 거리들, 그리고 계속되는 답답함. - 누가 그에게 속삭인 말을 그는 떠올리고 있다 - 나는 물이 되고 싶어. 빨간 물감을 풀면 빨간 물이 되고, 파란 물감을 풀면 파란색이 되고, 결국 여러 물감이 풀리면 회색빛이 되고마는 수채화 물통에 담긴 그 물 말이다.

금호천(?) 샛강이 보인다. 이 샛강은 금호강에서 나뉘어졌을 게다. 지금은 이미 보기조차 구역질 날 정도로 오염되어 있지만 그 강을 거슬러 올라가보자.
그때도 겨울이었을 게다. 지금도 바뀌지 않은, 중세를 고집하는 분도 수도원의 주일 아침 라틴어 미사는 있을 게다. 그 미사가 끝난 뒤, `내가 어릴 적 거닐었던 그 강가야.' 하며 그를 데리고 갔던 그녀. 아마 그 강가도 많이 변했을 게다.

뉴스가 들린다.
`정부는 어제밤에 국제 통화 기금에 공식적으로 구제금융을 신청하겠다'고 한다. 달러화 환율 상승, 외화 통화 중지, 고속도로 방음벽 - 도시를 벗어나고 있었다 - 고속도로 공사, 그리고 한 사내의 도피.

한국 산은 말이야, 너무 대책 없이 나무를 심었어. 나무를 자원으로 쓸수도 있는데 말이야. 이 말을 한 처자는 참 영악했다. 그 처자는 자기가 꿈 꾸는 일은 된다고 믿고 있었다. 아마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을 게다.

그는 지금 졸고 있는 사람들을 본다.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끊임없이 까딱거리며 졸고 있는 옆의 처자를 힐끔보며, 내 작은 어깨라도 빌려주고 싶건만 - 어깨를 빌려준다는 행위가 자연스러울 수는 없는지. 그는 초등학교 시절 짝인, 며칠전 아주 괜찮다고 하는 사내랑 결혼을 한 한 여자애에게 아주 오래전에 내뱉은 말을 드듬고 있었다. 여기까지는 내 자리야. 더 넘어오지 마!

그곳에 가게 되면, 더 이상 머리 아픈 생각들을 하지 않겠다 했다. 어른들은 그것을 배부른 고민이라 했고, 친구들은 그의 편집광적인 삶에 대한 집착에서 나오는 멍청한 도피라고 했다.

광주.
친구들이 망월동 묘지를 찾으며 군부타도를 외칠 때, 그는 사랑하는 이와 바다를 찾았다. 4월이었을 게다. 친구들은 잔인한 달이라고 부르는 한 글쟁이의 표현을 그대로 인용했으며, 그 4월이 `잔인해야한다'고 그 공허한 외침을 하고 있을 때, 그는 개나리 파란싹의 억척스러움과 봄날 나를한 햇살을 먹고 말라가는 바위틈의 이끼가 내뱉는 꿈을 그녀와 나누고 싶어했다.

패스트푸트라는 아주 간단한 먹을 거리로 점심을 하고 다시 땅끝행 버스에 오른다. 찾는 이가 많지 않은가 보다. 버스는 더 이상 꾸역꾸역 거리지 않았다.

건너편 의자에는 부케를 든 한 쌍의 젊은 여자들이 끊임 없이 수다를 떨고 있고, 맨 뒷자리에 혼자 앉은 중학생 쯤 되어 보이는 아이는 그처럼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다. - 여기까지는 내 자리야. 넘어오지마.

얼마 즈음 왔을까? 몇 시간 즈음 왔을까?
잠깐 눈을 붙힌 사이에 바다 내음이 그의 눈을 뜨게 했다. 바다 냄새 - 30%의 소금 냄새와 30%의 비린내와 30%의 뭍 냄새와 10%의 사람 냄새. 사람들 - 해남에서 차에 타고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렸고, 어느새 그 큰 버스안에는 기사 아저씨와 그와 그리고 낯선 한 사내가 땅끝을 향한다. 곧 그 낯선 사내도 밤이라 어딘지 분간하지 못하는 낯선 곳에 내린다.

그의 여행은 처음에 계획 했던 대로 정말 혼자서 땅끝을 가는 것이 되고 말았다. 완벽한 도망.

땅끝 가는가 - 그렇다 - 왜 혼자 가는가 - 그냥 관광이다(아니, 이건 도망이야) - 그럼 이 늦은 시간에 저녁이라도 먹어야겠구만이 - 그는 아무말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그곳에 도착하게 되면 술 한잔 마시고 싶다'고 노래하는 한 아저씨처럼 해보고 싶었기 때문에.

마지막 - 종점 - 버스는 더 이상 가지 않는다. 아니 더 갈 곳이 없는게다. 그는 길의 끝자락에 내렸고, 바다인지 뭍인지 모르는 그 어둠 속에 선다.

날이 차다. 그는 묵을 곳부터 찾는다.
묵을 곳 - 살고 싶은 게야. 분명코 살고 싶지 않다면 죽을 곳을 찾았을 게다. 그는 따뜻한 저녁 한끼와 이 추위를 피할 수 있는 잠자리를 찾고 있었던 게다. 보라, 이 영악함을! 분명코 처음에는 `도망가고 싶어 했다'로 시작해두고는 지금은 `그는 묵을 곳부터 찾는다'고 하고 있다. 그 `도망가고 싶음'은 `삶으로부터'의 도망일 게다. 하지만 그는 그 도망에서 조차 살고 싶어 한다 - 영악함!

기태라는 한 사내 이야기를 해야겠다, 그가 얼마나 영악하지 못했는지를. 기태는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그 아줌마는 시장 난전상이였으며, 하루 끼니를 겨우 챙길 정도의 벌이가 고작이었다. 어린 시절, 기태와 기태 어머니와의 만남은 당연히 여느 어머니와 아들과의 관계처럼 오랜 시간을 같이 할 수가 없었다. 기태는 늘 혼자였고, 그의 생각 또한 늘 자신이 무엇인가를 결정해야하고, 그것을 자신이 해야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흔히 하는 멋진 표현, 이유 없는 반항의 시절은 기태에게도 적용이 되었고, 자기 삶에 대한 부끄러움과 자기 어머니의 삶에 대한 불만이 동료 학우들에게 폭력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얼마전 우연찮게 들은 소식은 현재 기태는 동거인과의 유흥비용을 마련키 위해 사고를 쳤고, 폭력/절도죄로 형무소에 있다는 것이였다.

그는 여관을 잡았고, 지금 술을 마신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술을 마시게 했는가?'라는 지극히 영어적인 표현을 애써 사용해가며 설명할 필요가 없는 듯하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 안될 만큼의 존재의 무거움도, 현실에 대한 집착도, 옛 사랑에 대한 서글픔도, 그에게는 이미 없었기 때문이다. 단지 할 짓 없이 멍하니 TV만 보고 있는 것 보다야 술을 마시는 편이 더 좋으니까, 그저 무료할 때 꺼내무는 담배처럼 술잔을 입으로 가져갈 뿐이다.

TV에서는 우디엘런 감독의 `부부일기'가 움직이고 있었다.
시작과 끝에만 흐르는 딕시랜드 째즈와 - 그때는 jass라고 했다고 한다 - 카메라를 어깨에 얹고 다큐멘터리 영화에서나 보여주는 분주하게 움직이는 화면 - 영화광들은 이것을 무슨 기법이라고 하는데 이것을 잊은지 꽤 오래다 - 어쩌면 더 이상 기억하고 있어야 할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 그리고 롱테이크, 이것과 반대되는 몽타쥬, 아무튼 화면편집과 카메라 다루는 기법이 아주 재미있는, 또한 다루고자 하는 중년부부의 이야기도 아주 재미있는 영화다. 그것을 자꾸만 비워져가는 술병이 증명하고 있다.

`삶은 예술이 아니라 3류 TV연속극 드라마다' - 우디엘런 영화중에 나오는 대사.
그는, 삶은 비록 3류 TV 연속극 드라마같을지라도 그 너머에는 언제나 꿈이 있어야 한다고, 꿈을 꾸는 한 살 맛 난다고, 그래서, 유치하기 그지없는 연애질에 눈물 찔찔 짜면서 마치 세상에 가장 슬픈 사랑은 자기가 하고 있는 냥 청승맞아 했다. 그리고는 또 착각을 한다. 맞아, 그건 내 아름다운 사랑이었어. 또 멋진 사랑을 할게야.

잠, 방음 시설이 변변찮은 방인지라, 옆방의 샤워소리, 사내의 오줌 싸는 소리 - 그것은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낙수물 소리였으니까 - 변기 물 내리는 소리, 그리고 덜컹거리는 소리와 약간의 신음소리 - 아줌마 - 나이 마흔은 넘은 한 여자의 신음소리라고 구체화 시킨다. 아마 이방에서 저런 소리들이 난다면 분명 옆에서 들리는 저런 소리에 신경을 안쓰겠지. 그는 뒤척인다. 약간의 알콜기운과, 우디엘런의 그 수다스러움과 꼬박 하루를 버스간에서 시달린 피곤함과, 옆에서 간간히 나는 밤소리(?)들이 섞여 뒤척이면서 잠을 든다.

몇시 즈음 일까? 그는 이번 여행에 아무것도 지니고 가지 않았다. 불과 만원짜리 지패 몇장 뿐. 시계가 필요없다고, 휴대폰도 필요없다고, 사진기, 여벌의 옷, 간식거리, 칫솔 치약, 그리고 비상약 - 예전 보경사 여행 때 옆에 사람이 독감으로 끙끙 앓고, 그는 그날 저녁 약국을 찾아 빗길을 그렇게 헤맸던 사실을 기억한다. `여행에는 반드시 비상약을 준비해야해' -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았다. 그 시간이라는 것 또한 별로 중요치 않았을 게다.

아침 빈 속에 담배를 피면 속 버려, 물이라도 한 잔 마시고 펴.
그는 기억한다, 그녀의 소리를. 그리고 담배를 피워문다. 자판기에서 내뱉는 진한 블랙 커피와 함께.

햇살이 따뜻하다.
그는 어느해 어느날 대한민국이라 불리는 국가명의 육지 최남단 끝자락에 서 있는 것이다. 보길도에서의 윤선도 아저씨의 운치를 느끼고 싶은 것도 아니요, 완도의 수려한 해상관광을 즐기기 위함도 아니요, 사랑하는 이와의 애정의 도피 행각도 아닌 그저 끝자락에 서 있다는 것. 애써 의미를 부여한다. 내가 걸어서 더 갈 곳은 없다는 것에, 그리고 돌아가야 한다는 것에.

그는 해가 참 높이도 올랐는 그 즈음에 광주행 버스에 오른다. 내릴 때 혼자 내렸는 것과 달리, 한쌍의 연인과, 읍내 볼일이 있어 잠시 외출을 하는 듯한 한 아낙과, 일요일 오후 약속을 지키기위해 이동하고 있다고 추측되는 한 사내도 같이 탄다.

여기서 그의 땅끝 여행은 끝이 난다.

광주에서의 다섯시간 - 차마 땅끝에 미쳐 두고 오지 못한 그 사치 - 라데츠키 행진곡에 춤을 추며, 유진박의 째즈 바이올린, 요즘 빠져 있는 삐아졸라 아저씨의 탱고 - 와 광역삐삐, 원고료로 매꾸는 통신비, 자동차 면허증, 미쳐 끝내지 못한 웹 cgi, 드문 드문 떠오르는 여인, 아무튼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들을 함께 뒤섞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