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방장전

                                                       터들이

  이씨는 서른 셋을 올해도 노총각이라는 놈에게 넘겨주고 말았다. 언제나 그
렇듯이 독신주의를  가장 혐오하는 이씨가 장가를  아직 못간 것은 '노처녀가 
시집을 가기 싫다'는 그  거짓말에는 포함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동네 아줌
마들의 입방정에는 항상 이씨의 이야기가 빠지는 날이 없었다.
  아이 시절 마루치 아라치 영향인지, 이씨의 꿈은 과학자가 되어 악당으로부
터 지구를 지키는 것이였으나,  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 그는 요리학원을 다녔
다. 자기가 먹고 싶은 것을 자기가 만들어 먹어 볼 수 있다는 그 묘한 매력은 
이씨를 수업도 빼먹어가며 요리학원을 다니게 했나보다. 하지만, 지금 이씨는 
동네 반점에서 배달겸 요리사로  일하고 있다. 언제나, 동네 아줌마들은 반점
에서 음식을 먹지 않고, 꼭 시켜 먹는다. 이씨의 그 어울리지 않는 까만색 색
안경을 보며 웃는 것을  즐기기 때문인가 보다. 기실 동네 반점에서 철가방을 
들고 배달하는 종웝원이 나이가  서른이 넘은 노총각에 자기가 마치 터미네이
터라도 되는양 선그래스를 쓰고 '아이 윌 비 백'하고 짜장면 그릇을 던져놓고 
가는 모습은 매일 고스톱으로  소일하는 동네 아줌마들에게는 아주 좋은 볼거
리일게다.
  "아저씨, 와 이리 늦게 오노? 전화한 지가 언젠데...."
  "아즈메, 난 아저씨가 아니고, 이래뵈도 케이예스표 총각."
  "아따마, 케이예스표 총각 다 수출됐나보네, 아저씨가 총각이라니..."
  "아따마, 아즈메보고 '할매요, 짜장면 왔심더'하면 좋겠는교?"
  "아, 고마하소. 총각은 퍼뜩 짜장면이나 놓고 가소."
  "우짜노, 저 문디 가시나 청단했네."

  이씨가 이 반점에 온지가 근 3년이 지났으니, 동네 사람은 다 이씨를 알고, 
남의 일에 참견 많은 아줌마들은 벌써 이씨를 꼬득여 선도 몇번 보게 했지만, 
어째 이씨의 짚신 한 짝은 그리 쉽게 나타나지 않았나보다. 기실 그것도 그렇
지만 요즘 세상에 짜장면 요리사나  하고 있는 홀홀 단신의 서른 넘은 노총각
에게 시집 올려고 하는 사람도 없을게다. 
  토요일 저녁 시간은 일주일  중 제일 분볐다. 그날이 유일하게 이씨가 주방
에만 붙어있는 날이다. 주방이라고 해야 가게에 붙어 있는, 달랑 두개의 화덕
만 있는 보잘  것 없는 곳이지만, 그곳에서  짜장면을 위시해 온갖 요리가 다 
만들어진다. 이날은 시내에 볼일  있어 갔다가 여기 드르는 손님도 가끔 찾아
와 식사를 하고  간다. 어찌 동네 아줌마들이랑  비하랴, 구미호 되다만 손톱
에, 드라큐라 식사 끝난 입술에, 자기가 뭐 샤론스톤이라도 된듯양 다리 꼬고 
앉아 짜장면을 먹고 있는 아가씨를 볼짝시면, 이씨는 짜장도 득뿍, 양파도 득
뿍 게다가 디져트로 껌 대신에 야구르트까지. 그런데, 그 아가씨가 내뱉는 말
이,
  "저... 이만원씨 아니라예?"
  "맞심더, 근데, 내 이름은 우째 아는교?"
  "한 달 전 저희 집에 와서 '이만원입니다'라고 했잖아예. 호호호"
  "아 오천원이 하고 같이 술집에서 만난 아가씨?"
  "기억하시나 보네. 저 나요염이라애."
  "기억나네예. 미쓰나."

  한 달 전, 이씨의 셋방에  밤 12시가 넘어 전화가 왔다. 고등학교부터 단짝
이었던 오천원의 전화였다. 그  때부터 홍콩영화만 광적으로 좋아했던 오씨는 
지금은 무협지를 쓰는 글쟁이로 살고 있다. 전화 내용은 당장 오씨가 이씨 집
으로 가겠다는 것이였다.
  "구신은 뭐하노, 저 문디 안 잡아가고."
  이 말은 이씨가 전화를 끊고 하는 소리 였다. 몇 분 후 곧 오씨는 한 달 넘
게 깍지 않은 염소 수염과  니코틴에 쪄려 있는 누런 손가락과 다섯 발가락이
분리된 양발에 슬리퍼를 신고 이씨의 셋방으로 찾아왔다. 그리고는 
  "우리 신선주를 찾으러 가자!"
  하며 이씨를 끌고 거리를 나섰다.
  "미친놈, 저래도 무협지가 팔리는 것 보면 신기하지."
  "이 놈아, 그래도 난 하루 종일 짜장면이나 만드는 니놈 보단 낳다."
  "똑같이 장가 못 간 주재에 무신 할 말이 있다고."
  "야! 니나 못 간 거지, 내가 못 갔나. 난 안 간거지."
  "신선주를 찾으러 밤 12시에 나돌아 다니는 놈한테 누가 시집오나?"
  "그래도 나는 오늘도 여자를 차고 왔구만."
  이런 이야기들이 오가면서 밤  거리를 둘이 헤매고 있다가 오씨가 "바로 저
기야"하며 걸음을 재촉했다. 오씨의  주장은 '저집' - 이씨의 눈에는 분명 가
정집으로 보이는 - 에 신선주가  있다고 하면서 막 가는 것이였다. 가정집 대
문이 열리고 한 아줌마가 나왔다.
  "주모, 여기 신선주 있소?"
  "물론 있지예, 어서오이소."
  현관 문을 열고  들어가 보인 것은 거실이  아니라, 룸 술집이었다. 푸줏간 
고기를 진열 해 놓을 때  쓰는 빨간 조명과 늘씬한 아가씨들이 요상한 자세를 
하고 술병을 들고 있는 사진들이  여기 저기 벽에 붙혀 있었다. 둘이는 한 방
으로 들어갔다. 그 방에는 네다섯 앉을 수 있는 소파와 하나의 탁자와 그리고 
사진들 뿐이였다. 여름 바다  모래밭에 비키니 수영복 차림, 아니, 위에 것은 
하지 않았으니까 그냥 팬티  바람의 아가씨가 엉덩이를 정면으로 해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엉덩이 쪽으로  돌리면서 피씩 웃고, 거기다가 왼손으로는 무슨 
양주병 하나를 들고 있는 모습을 오씨는 뚜러지게 처다 보더니,
  "오늘은 우리 태산에 가서 항우를 만나 보세."
  "니, 무신 소리 하노?"
  "우하하하. 어찌 니같은 놈이 내 마음을 알리요. 우하하하하"
  "지날병하고 있네. 야, 천원아 정신 차리라! 술도 안 먹은 놈이"
  "우희를 죽인 항우는 얼마나 행복할까? 난 그것이 궁금하다."
  
  이런 이야기가 오가는 중에 방  문이 열리더니 한 아가씨가 요한의 목을 쟁
반에 담아 자기 엄마에게 가져가는 헤로디아의 딸 같은 모양으로 쟁반에 술을 
담아 들어오것다. 그때 오씨가 외치는 소리.
  "오, 드디어 나타났군. 내 갈비뼈에서 나온 것. 지아비에게서 나왔으니, 지
어미라 부르리라."
  "전, 지어미가 아이고예, 마쓰 나라예."
  "아하.. 미쓰 나. 우하하하, 잘못 말하면 가쓰나 같네."
  "이해 해요. 아가씨 지금 저놈이 술 안마시고 취했나 봅니다."
  "야, 만원, 장가도 못간 주재에...."
  "만원?"
  "저놈 이름이 이만원이야. 가쓰나"
  "가쓰나가 아니고, 미쓰나... 그건 그렇고 이름이 정말 이만원이라예?"
  "저놈 아버지 때는 이만원이 큰 돈인 모양인가 보지. 아버지가 그렇게 지었
  데."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 한 이씨는 당장 쏘아붙힌다.
  "지는 오천원 주재에."
  "호호호, 아저씬 오천원이라예?"
  "나야, 이 오천원 안에는 그래도 이만원보다 많은 무협지가 들어있지. 우하
  하하."

  "미쓰나는 낮에 뭐 하는교?"
  이 질문이 체 끝나기도 전에 다른 손님이 왔다. 이씨는 그 새로온 손님에게 
주문을 받고 다시 주방으로  들어갔다. 요리는 언제나 이씨의 몫이였으니. 그
렇다고 게을리  아무렇게나 만들지는 않았다.  짜장면이라도 깜뿡기를 만드는 
정성으로.
  "여기 얼마라예?"
  짜장면을 다먹고 다시 루즈를  - 마치 드라큐라가 포식을 했다는 듯이 흐뭇
한 표정으로 빨간 루즈를 지워진 부분에 다시 칠하면서 나요염이 말한 것이였
다.
  "아저씨 한 번 다시 우리집에 오이소. 잘 해드릴게예."
  반점에서 음식을 먹고  있던 사람들이 모두 이  말하는 아가씨를 처다 보았
다. 마늘린 몬노 같은 엉덩이를 실쭉 실쭉 흔들며 반점을 나가는 그 아가씨의 
뒷모습까지 계속 보고 있었다.  물론 그렇게 보는 사람 중에는 나요염에게 줄 
요구르트를 미쳐 전하지 못하고 뒷모습만 뚜러지게 처다 본 이씨도 있었다.

  기실 모든 음식점이 다 그렇겠지만 가게 문 닫을 때 남는 것은 항상 쓰레기
이다. 그중 대부분을  차지 하는 것은 음식  찌꺼지이고. 이건 김밥이 엎구리 
터진게 아니고, 완전 그 뭐시기냐 '독수리 오형제'에 나오는 순이처럼 망토를 
두르고 오토바이  바가지를 쓰고 알렉터 군단으로부터  지구를 구해야 한다며 
심심하면 나타나는 이씨 동네의  미친 박복례 아줌마의 그림솜씨 같다. 그 아
줌마는 이씨의 동네에서 연탄가스로  자기 가족 모두를 잃고 자기만 살아남아 
저렇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동네 사람들도 복례 아줌마가 아무리 난장
판을 버려도 다 이해하면서  넘어갔다. 복례 아줌마의 아들이 그린 그림을 자
기도 그린다며  동네 빈벽이면 가만두지 않고  그림을 그려됐다. 물론 이씨가 
일하는 반점에  그 아줌마가 나타나면 이씨는  언제든지 우동을 대접했다. 그 
아줌마가 나타나는 시간은 언제나 문닫을 시간이었다. 그래서 이씨는 그날 요
리 하다 남은 모든  재료로 우동을 끓인다. 탕수육에 쓰다만 돼지고기와 난자
완스에 들어가는 달걀 새알까지도  우동에 포함시킨다. 복례 아줌마는 우동을 
잘 먹었다. 기실 왠만큼  배고프지 않은 사람이면 우동 그릇을 깨끗이 비우기
가 힘든 일인데, 그 아줌마는  음식 찌꺼기 하나 남지기 않고 항상 그릇을 깨
끗이 비웠다. 그리고 나가면서 하는 말.
  "이씨, 알렉터 군단이 처들어 오면 내게 꼭 알려. 알았지?"
  "예. 아즈메 몸이나 잘 살피소. 우동 먹고 싶으면 또 오고예."
  
  그런데 일은 복례 아줌마가 저지르고 말았다. 그 날도 반점 문 닫을 시간이
었다. 이때 나요염이 반점 문을 열고 들어왔다.
  "이만원씨 계세요?"
  "아, 미쓰나? 이 시간에 와 았는교? 일은 안하고"
  "출출해서예. 이짓도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주문은 뭘로 할란교?"
  이날은 머리에  요리 모자를 쓰고 있는게  고작이었으니 망정이지, 이 때도 
아마 까만  선그래스를 썼다면 흡사 터미네이터였을게다.  야심한 밤에, 텅빈 
반점에 허벅지를  가렸는지, 엉덩이를 가렸는지 분간이  안갈 치마에, 뛰기만 
하면 출렁거릴 풍만한 가슴을, 햇빛만 곱게 내리 비치면 다 보일 그물 웃옷을 
입고 있는 젊은 아가씨가  들어왔다면, 기실 뭇 사내들이 눈길을 주지 않는다
는 말은 거짓말일게다. 하지만  이씨의 직업이 직업인지라 제일 먼저 물어 본 
말은 '무엇을 먹겠냐'라는 말이였다. 
  "이 시간에 뭐가 되는데예? 난 우동을 먹고 싶은데. 빨리 되예?"
  "미쓰나가 왔는데, 오징어가 없으면 벼룩시장 가서라도 사와서 만들지."
  "호호호, 그냥 되는대로 빨리 주이소."
  이씨는 주방으로 들어갔고, 이씨의  당근 써는 솜씨는 가히 신의 경지여서,
그 무식하게 생긴 주방  칼이 도마 위에 떨어지는 소리는 '두두두두...' 흡사 
굴착기 같았다. 화덕에 피어 오르는 불꽃 또한 여느때와는 달랐다. '되는대로 
빨리'라는 말은 나요염의 생각일  뿐이였다. 이씨는 자기 이마에서 땀이 흘러 
내리는 줄도 모르게 삶고, 뽁고, 끓이고 있었다. 한 15분이 지나서야, 이씨는 
우동 그릇 하나를 주방에서 내 놓았다. 
  "자, 퍼떡 먹고 가서 열심히 일 하소."
  "예. 맛있겠네예."
  나요염같은 아가씨가 와서 음식을  먹을 때, 이씨는 항상 궁금해 하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어떻게 여자들은  루즈를 바르고 음식을 먹을 수 있을까? 그
것도 루즈가 입술에서 지워지지  않고.'라는 물음이다. 이런 물음을 나요염에
게 직접 물어보지는 못하겠고,  이씨는 그냥 나요염이 우동을 먹는 모습만 뚜
러지게 보고 있었다. 그때다.  복례 아줌마가 나타났다. 우동을 먹으러 온 사
람이 아닌  것 같았다. 그 성냥깨비만한  눈이 500원짜리 동전만해지고, 옛날 
만화영화에서 나오는 주인공의 대사처럼 우렁찬 목소리로.
  "아니, 알렉터 군단의 간첩이다."
  상황은 급박하게 흘렀다. 이씨는 황급히 복례 아줌마를 잡는다. 하지만, 어
느새 복례 아줌마는 나요염 앞에 섰다. 
  "지구는 너같은 년에게 줄 수 없다."
  "이씨, 저년에게 먹을 것을 주다니, 돌았군."
  하며, 나요염이 먹던 우동  그릇을 엎는다. 우동 국물은 나요염의 가슴으로 
흐른다. 놀란 나요염은 벌떡  일으서면서 비명을 지른다. 일이 이렇게 버러지
고서야 이씨는 뒷 수습에 나선다.
  "아즈메, 고마하소. 여기 손님이라예."
  "손님이라니, 간첩이야."
  "아줌마, 와 이레예? 나는예, 우동 먹으러 왔으예."
  "우동 먹으러 온 년이 완전 알렌터 군단의 군복을 입고 오다니."
  "이씨, 빨리 경찰서 신고해.  안그러면 곧 지구가 위험해. 아니, 내가 정의
  의 이름으로 이 년을 처단하리라."
  "아따마, 고마하소."
  이씨는 복례 아줌마를 끌고 반점에서 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복례 아줌마는 
독수리 오형제의 순이가 되는양  날렵했다. 몇분의 실랑이가 있었다. 결국 반
점이 갑자기 시끄러운  것을 알고 나온 동네  사람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복례 
아줌마를 반점에서 나오게 했다. 아니, 끌어내었다. 나요염은 자기 옷에 뭍은 
풀린 계란과 양파 등을  때어내고 있었다. 이씨는 미안하다는 말을 계속 하면
서 수건을 건내 주었다. 
  "오늘, 재수 옴 붙었네예."
  "미쓰나가 이해 하소. 저 아줌마 사연이 ..."
  "그래도 그렇지예, 저런 사람은 정신병원에 보내야지예."
  "그런 소리 하지 마소. 불쌍한 사람입니더."
  "불쌍해도 그렇지예, 오천원씨 꼴 나면 안돼잖아예."

  상표도 없는 양주병에 꼭 보리차같은 색깔의 술을 담고, 얼음 몇 조각이 담
긴 그릇과  바나나와 수박, 사과와 토마토가  감질나게 장식되어 있는 접시와 
우유팩이 쟁반에 담겨 있었다. 그것을 본 오씨는 
  "오, 신선주!"
  단 한 마디만 외치고는 그  쟁반을 탁자에 내려 놓기도 전에 술병을 들고는 
병마개를 열고 혼자 따르기  시작했다. 이것을 본 나요염은 재빨리 오씨의 옆
에 앉아 술 따르기를 거들었다. 이제서야, 오씨는 나요염을 의식했는지, 퉁명
스럽게 말을 건넨다.
  "가쓰나 혼자 왔나? 저놈 가쓰나는?"
  "가쓰나, 가쓰나 자꾸 칼랍니꺼? 곧 들어와예."
  이 말이 떨어지자 마자,  한 아가씨가 나요염의 차림과 비슷하게 해서 방으
로 들어왔다. 얼굴은 벌써 빨갛게 달아 올라 있었고, 어줍잖게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탁자를 중심으로 오씨와 이씨가 마주 앉아 있었고, 오씨의 옆에는 나
요염이 있었기에, 그  아가씨는 아무말 하지 않고  그냥 이씨의 옆에 앉았다. 
오씨는 
  "만원아, 아니, 오늘은  '자네'라고 부르고 싶군. 자네  술 한 잔 하게.  이 
  신선주가 말이야...."
  "제가 따라 들이지요."
  하며 그  아가씨가 술병을 가로챘다. 그리고는  이씨의 술잔에 술을 따르기 
시작했다. 
  "저 미쓰 주라고 해요. 성이 재밌죠? 호호"
  "그럼 이름이 뭔교?"
  "정혜."
  갑자기 오씨의 웃음이 터졌다.  이씨도 오씨의 웃음에 뒤이어 웃었다. 주정
혜는 당연히 그렇다는 듯이  술잔을 따르고는 자기 술잔을 채우고 있었다. 오
씨는 웃음이 진정되었는지 주정혜의  등장으로 잠시 미루워진 술 권하기를 다
시 시작했다.
  "자, 우리 우희를 자살 당하게 한 항우를 만나러 한 잔 하세."
  "누가 죽었어예?"
  전혀 관심은 없지만 이야기를 받아 주어야겠기에 되받아주는 주정혜의 말이
였다. 오씨는 왼쪽 팔꿈치를  탁자에 기대고 손으로는 자기 얼굴을 바치고 오
른 손에는 양주잔을 들고 양주잔을 비울 기색으로 있는 주정혜를 물끄러미 처
다 보더니, 곧이어 피식 피식 웃기 시작했다.
  "와 웃어예?"
  "미스 주도 아마 자살 당하기에 딱 좋을 인상이군. 자, 한 잔 하세."
  "아따마 죽는 이야기 고마하고 술이나 마시이소."
  사람들과 시비를 잘 붙는게 오씨의 버릇이라는 것을 이씨는 잘 알기에 이씨
도 술 권하기를 재촉했다. 
  그 자리의 술은 쉽게  비워져갔다. 오씨는 술잔을 비우면서 점점 연불을 하
는 것 같이 혼자 중얼거리기  시작했고, 같이 있는 두 아가씨는 그저 그 이야
기를 열심히 들어주고 있을 뿐이였다. 
  "내가 말이야,,,,, 만원아, 너  고상이 알지? 시 쓰는 놈.... 그 놈이 말이
  야... 이번에 또 시집을  하나 낸다고 알랑방구를 내게 끼더군. 그래서, 내
  가 뭐라고  했는줄 알아? 껄껄..... 제발  우물에 달 따러는 가지마라고  했
  지..... 그랬더니 고상이가 정색을 하면서 나더러 '넌 술만 작작 마시면 다 
  좋겠다'고 하더군. 너도 알지? 내가 술 없으면 어떻게 되는지..... 역시 이 
  신선주는 최고야..... 근데, 그 년은 왜 내가 싫다는 건지...."
  "누구?"
  "아, 내가 말 안했구나. 한 한 달 전 집에 한 젊은 여자애 목소리로 전화가 
  왔더군. 뭐, 내 소설을 무지 재밌게 읽었데나 뭐래나 하며. 그러면서 꼭 만
  나보고 싶데.  그래서 만났지. 그리고는 연애도  하고, 근데, 오늘 그  년이 
  내게 하는 말이 뭐 시집간데나? 나쁜 년..... 그래서 내가 찼어."
  "아저씨, 그건 찼는게 아니고 차인거네요."
  새벽 어시장에 진열된 어제 잡혀온 명태 눈깔 같은 눈빛으로 주정혜는 한
참 이야기를 듣더니 오씨에게 말했다. 
  "미스 주는 계속 술이나  마시셔... 난 이제껏 여자에게 차여 본적이 없어, 
  내 무협지에도 여자에게 차이는 남자는 안나와. 여자란 원래 남자의 야망을 
  채워줄 노리개감으로 밖에는 안되니까... 푸하하하."
  "남자들은 심심하면 여자를 무슨 장난감으로 안단 말이야."
  주정혜의 눈빛이 달라지면서 술잔  비우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었다. 이씨가 
이제는 주정혜의 술잔을 채워주고 있었다. 
  "참아요, 아가씨, 저놈이 원래 그래요."
  "이만원, 닌 그래서 아직 장가를 못간거야."
  "그래, 넌 그래서 그렇게 계속 차이기만 하고....."
  "허허 , 이놈까지....."
  나요염은 그 자리에 드디어 끼어 들었다, 이러다가는 아무래도 술값도 못받
는 사태가 벌어질 것이다는 오랜 직업에서 나온 경험때문에.
  "아저씨들 고마하소. 좋은 술 앞에 두고 뭐하는교."
  "가쓰나는 조용해. 난 도저히 참을  수 없다. 이 참을 수 없는 감각의 가벼
움! 세상엔 항우가 필요해. 그래서 그런 년은 자살 당하게 해야 한다니까. 저
년도."
  채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갑자기 벌떡 일어나 주정혜의 머리채를 잡았다.
  "이년, 니가 날 좋다고 해 놓고는, 이제와서 시집을 간다니."
  "와 이래예? 정신 차리이소."
  "천원아, 아이다, 이 아가씨가 아이다 안카나."
  "넌, 죽어야해, 어서 죽어라, 죽어!"
  방은 갑자기 동네 시장에서 오천원을 냈니 안냈니 하며 싸우는 아줌마와 난
전상의 모습으로 변해 버렸다. 

  우동 국물에 웃옷을 다 버려버린  나요염에게 어떻게 해 줄 도리가 없어 쩔
쩔 매는 양 처다보고 있는 이씨가 할 수 있는 말은 이 말 뿐이였다.  
  "옷 다 버려 일하겠는교?"
  "우짜겠어예, 집에 가서 갈아 입고 가야지예."
  "그래, 액땜 한셈 치소. 그래도 그 아즈메 마음은 정말 괜찮심더."
  복례 아줌마는 동네의 궂은 일은 언제나 자기 몫인 마냥 열심히 해 주었다. 
그도 그럴것이 가끔 이렇게 얄궂은  일을 벌려 동네 사람들로 하여금 가슴 아
프게 하기도 하지만, 이씨의 이 말은 맞는 말이었다. 
  "그나 저나 뭘입지....."
  반점 문닫을 시간이면 언제나 그랬듯이 사람들이 버려놓은 젓가락과 휴지들
을 치우고 있는 이씨를 두고, 나요염은 주저하면서 말을 꺼내놓는 것이였다. 
  "그래도, 이 옷이 제일 괜찮았는데...."
  이 옷, 까만색 그물 옷이였다.  개천의 송사리는 충분히 빠져 나갈 수 있을 
만큼 듬성듬성한 그물 옷이였다. 게다가 힐끔 힐끔, 아니 유심히 보면 보이는 
속살. 이씨는 의식적으로 그  옷에 눈길을 주지 않으려고 열심히 반점 바닥을 
쓸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태연한척 하려고,
  "아무 옷이나 입고 가소. 미쓰 나는 예뻐, 아무 옷이나 입어도..."
  "그래도, 이게 일인데, 성의 없이 아무 옷이나 입을 수 있나요. 호호호"
  "오천원이 여기 있었으면 또 싸움 나겠소.. 허허."
  "오천원씨는 그날 잘 들어갔죠?"
  "허허, 아주 잘 들어갔죠. 그 놈 아마 지금 신선주만 먹고 있을깁니더."
  "술, 정말 좀 적게 먹으라고 하이소."
  "괜찮심더, 그 놈 이제는 넘한테 욕 안 얻어 먹고 술마실테니까. 허허"
  "그럼 잘 되었네예. 저는 고마 가볼게예. 얼마라예?"
  "돈은 무신, 그냥 가소. 내가마 미안해 죽겠는데... 그냥 가소."
  나요염은 이씨의 떠밀림에 밀리어 반점문을 나섰고, 짧게 인사를 하고 사라
졌다. 이씨는 다시 반점 안으로 들어와 멍하니 서있었다. 오씨 이야기가 나와
서였다. 
  
  그 술집에서의 싸움은 술집 주인 아줌마가 와서 진정 되었다. 원더우먼이었
다. 방 안으로 들어온  아줌마는 오씨를 끌고 나갔다. 아주 간단했다. 이씨가 
그렇게 말려도 안되는 일이 그렇게  쉽게 끝나 버릴 줄이야. 이씨는 연일 '미
안하게 됐심더'라는 말을 하고 비틀거리는 오씨를 부축하면서 대문 밖을 나왔
다. 오씨는 계속 주절거렸다.
  "세상이 말이야, 이놈의 세상이 말이야...."
  "자, 자, 고마하고 가자. 집에 가서 디비 자는게 최고다."
  "집은? 집이 어디야, 하늘 아래 모든 것이 내 방이지..... 모두들 20평, 30
  평 되는 꽉  막힌 곳에 살면 답답지도  않나? 그리고는 예쁜 그림, 좋은  침
  대, 모두들 꾸밀 줄 만  알아가지고..... 아, 정말 참을 수 없다. 그 감각. 
  어제 출판사에서  뭐라고 하는지 알아? 좀더  감각적인 글을 쓰래.  나원참, 
  무협지에서 감각이 빠지면 죽은 글이래라 뭐래라하며,.... 에라, 이 비러먹
  을 감각, ....."
  "고마해라, 먹고 사는게 다 그렇지."
  "그 감각, 감각 하는 세상 이거나 먹어라."
  오씨는 그 자리에서 오줌을  누기 시작했다. 그곳은 그 가정집 같은 술집에
서 나온 골목길이었다. 그것도 길 중앙에서 오줌을 누기 시작했다. 이씨도 술
이 어느 정도 취한  상태라 더이상 말리지는 않았다. 길바닥은 오줌으로 흥긍
해지고 오씨는 자기 오줌이  길바닥에 떨어지는 것을 보면서 좋아라고 웃어대
고 있었다. 
  "빨리 해, 다른 사람 보면 욕한다. 아따마, 이놈 오늘따라 와이카노."
  "난 말이야, 세상을 바꾸어  놓을 수 있는 그런 글을 쓰고 싶었지. 그런데, 
  재미 있는 것은 내가  글을 써도 세상이 안 바뀌어 지더라는거야. 그리고는 
  세상은 계속 그 감각만  쫓아가고 있잖아. 만원아 니는 내 마음 알겠나? 하
  기야, 니놈이 알리가 없겠제. 노상 짜장면이나 만드니까...."
  "임마, 짜장면 만드는게 어때서? 닌 밥 안먹고 사나... 짜식."
  이씨는 자기가 반점 주방장이라는 것을 한번도 후회해 본적이 없었다. 왜냐
하면, 자기가 만든 음식을 먹고 일어서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보이는 '잘 먹었
다'라는 그 흐뭇한 표정때문이었다. 비록 저녁 늦게 반점에 와서 오씨처럼 고
량주를 시켜놓고 술  주정 하는 사람들 때문에  몇번 직업을 바꿀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배운 것이 음식 만드는  일 뿐이라, 그리고, 동네 사람들과 정도 들
은 탓이라 계속 그 반점에서 일하고 있는 것이였다. 
  골목길을 나서 차들이 다니는  큰길에 나왔다. 시간이 모두들 자고 있는 시
간이라, 달리는  차들은 거의 없었다. 둘은  비틀거리면서 계속 걷고 있었다. 
이씨가 오씨를 부축하고  있으면서도 그 부축하는 것을  더 힘드게 하는 것은 
오씨의 그 끊임없는 주절거림때문이었다.
  "뭐, 순수소설, 상업소설... 놀고 있네. 그래, 난 무협지나 쓰는 글쟁이다. 
  노상 그 참을 수 없는 감각의 가벼움이나 이야기하면서 알랑거리는 그런 인
  간들을 보면 정말.... 에이 이거나 먹어라."
  결국 오씨는 전봇대를  붙잡고 술집에서 먹은 것들을  도로 내어 놓고 있었
다. 이씨는 오씨의 등을 두드리며,  
  "괜찮나? 빨리 집에 가는게  최고겠다. 아따마 오늘 이놈 무지 머리 아프게 
  하네."
  한참을 꽥꽥 거리더니, 다시 일어서는 또 중얼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가 오씨가 갑자기 도로 중앙으로 띄어들었다.
  "출판사 사장이 감각적인 글을  써보래. 그래서 어쩔 수 있냐? 열심히 해보
  겠다 했지. 근데, 난 죽는 감각이 어떤지 모르거든. 내가 안 죽어 봤으니까 
  당연하지. 푸하하하."
  "천원아. 고마해라."
  "근데, 이 시간에 차에 치어 죽는다는 것은 좀 무리겠지? 허허"
  "고마하라니까."
  "난 우희가 부럽다. 그렇게  죽을 수 있다는 것이. 아무래도 오늘은 우희를 
  만나러 가야겠어. 그래 우리 2차를 가는 거야. 자, 가자, 태산으로......"
  이씨는 찻길 한 중앙에 있는 오씨를 인도로 끌고 와서 다시 부축을 했다. 
  "야, 원래 먹고 사는게 다  이렇잖아. 나도 반점 일 다끝나고 방에 오면 어
  깨가 욱씬욱씬 한다.  다 그렇게 사는 거지  뭐. 고마하고 집에 가서  자자. 
  그래 우리집에 가자. 난 내일 반점 나가고, 넌 글 써야제."
  오씨는 말이 없이 앞만  보며 걸어갔다. 이때를 틈타 이번에는 이씨가 계속 
주절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너도 계속  무협지만 쓰는 글쟁이로 있으라는  법있냐, 나도 뭐 노상  반점 
  주방장만 하라는  법도 없지. 그래, 열심히  하면 언젠가는 좋은 날  안있겠
  나."
  오씨가 말이 없었던 것은  지나가는 차를 보고 있었던 것이였다. 오씨는 이
씨가 말하는 중에 자기들  앞으로 달려오는 차로 띄어들었다. 이씨가 막을 사
이도 없이 일을 벌어지고 말았다. 

  "아저씨, 와 이리 늦게 오노? 전화한 지가 언젠데...."
  "아즈메, 난 아저씨가 아니고, 이래뵈도 케이예스표 총각."
  "아따마, 케이예스표 총각 다 수출됐나보네, 아저씨가 총각이라니..."
  "아따마, 아즈메보고 '할매요, 짜장면 왔심더'하면 좋겠는교?"
  "아, 고마하소. 총각은 퍼뜩 짜장면이나 놓고 가소."
  "우짜노, 저 문디 가시나 청단했네."

  어제 나요염의 우동국물 사건이  있은 후에도 여전히 이씨는 짜장면 배달을 
갔다. 여전히 그 어울리지 않는 까만색 선그래스를 쓰고 말이다. 

                                                     - 끝 -